겨자씨만한 믿음 #1 (믿음이 적은 연고라)
- KIMMSN
- 2023년 7월 4일
- 7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7월 5일
마태복음 17:14-20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어떤 아이 부모가 예수님을 찿아와서 히소연했습니다
하소연 내용은 자기 아이가 간질로 심한 고생을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와도 고치질 못한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라고 하시면서 아이를 데려 오라고 하시고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그 아이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얼마나 너희를 참아야 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내(예수님)가 너희와 이 만큼 같이 있으면서 참아 왔는데 도더체 얼마나 더 함께 있고 참아야하느냐! 라는 말씀이 되겠지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쉼게 이해 됩니까?
마치 ‘베터리 충전을 얼마나 오래 했는데 아직도 충전이 안되었느냐’라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요?
그렇다면 제자들 중에 베터리 충전이 완전히 된 사람은 이런 귀신은 얼마든지 쫓아 낼 수 있다는것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특별 집회를 가보면 충만하게 충전 된 사람이 장풍으로 사람을 쓰러 뜨리며 엄청난 기적으로 병고치고 귀신을 쫓는 일을 하는것을 볼 수 있지 않나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귀신이 나가지 않는 이유를 물었을때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 했습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만일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만 있다면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낫는것 뿐 아니라 산도 여기저기 옮긴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 중에 하나인 겨자씨 크기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옯긴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간질 귀신 하나쯤(?)은 쉽게 낼 수 있겠지요
우리가 평생 교회를 다니는 동안에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다는 사람을 참 많이 보면서 살았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은사받은 사람들 등등…
그런데 그 많은 믿음이 많으신 분들이 산을 옮기신것 보신적 있나요?
믿음있는 목사님들이 산동네에서 개척하실때 산을 블도져로 깎습니까 아니면 기도로 산을 옮기거나 평평하게 만듭니까?
지구 역사상 믿음으로 산이 옮겨진것 기록 보신적 있나요?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산을 옮겨여야 할 정도의 절박한 상황이 한번도 없어선가요?
그런일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겨자씨만한 믿음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건 아닌가요?
만일 교회 안에 믿음이 많으신 분들의 기도로 백두산을 한라산이 있는 제주도 옆으로 옮긴다고 상상해 봅시다
아마 그 믿음의 한마디 기도로 인해 순식간에 한국은 핵폭탄같은 엄청난 재앙이 닥칠것입니다
목욕탕 물이 가득히 차 있을때 사람이 그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죠?
목욕탕 속으로 들아간 사람 만큼의 부력만큼 물이 목욕탕을 넘쳐 흐르겠지요
마찬가지로 백두산이 바다로 빠지는 순간 백두산과 그 백두산을 바치고 있는 백두산 보다100배 정도의 많은 백두산을 바치고있던 흙의 부력만큼 바다 물의 수면이 올라 오고 그로인해 엄청난 쓰나미가 한국을 삼켜 버릴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주도에 사는 믿음있는 사람이 백두산이 오는것이 싫어서 믿음의 기도로 백두산을 울릉도 옆으로 보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일 울릉도 사람도 백두산이 싫으면 서해 바다로 보내겠지요
그러다 잘못하면 백두산이 갈 곳을 잃고 하늘에 머물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백두사 결사반대’하고 각 지역 교회마다 통성 기도 시위를 할 수도 있잖아요
만일 믿음의 사람들이 있는 교회가 서로 산을 경쟁적으로 이리저리 옮긴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한국에 있는 산들이 이지저리 옮겨질 때마다 온 나라의 산들은 갈 곳을 잃고 하늘에 머물고 있는건 아닐까요?
다행히 지금까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에 한명도 없기에 산들이 제자리에서 못 움직이는 것에 감사할 뿐이죠
산을 옮기는 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사람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뜻이 되지요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못 들으면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라는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영어로 보시면 “Jesus the author and finisher of our faith”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믿음의 저자이며 완성자란 의미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뭔가를 굳세게 믿어서 그것이 나의 믿음이 되는것이 아니고
내 속에 예수님이 믿음이란 것을 만들어 넣으시는 저자이시고
그 믿음을 우리 속에서 완성 시키시는 분도 예수님이란 뜻입니다
내가 뭔가를 확실히 믿어서 생긴것이 나의 믿음이 아니란 말씀이지요
다시 말하면
산을 옮기는 믿음이나 귀신을 쫓아 내는 능력이 내가 굳세게 믿는 어떤 믿음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속에서 믿음을 시작하고 완성해서 나오는 능력에 의해,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신다는 뜻이죠 우리를 통해서…
마치 로보트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로보트를 작동 시키듯이
즉, 귀신을 쫓아 내거나 산을 옮기는 믿음의 능력은 예수님께서 내 속에서 하시는 일이란 뜻이죠 마치 아바타처럼요
아바타를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다른 예를 들면
우리는 망치인 셈이고 예수님이 망치인 우리를 잡고 못을 박는 그런 모양세입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들고 다니는 콤퓨터와 같죠
우리가 콤퓨터에 뭔가를 지시하면 그 콤퓨터는 엄청난 일들을 합니다
음악 소리도 내고 예쁜 사진 앨범 역할도 하고 거의 무한대 속도로 계산 능력도 있지요
그러나 콤퓨터는 스스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단지 시키는 일만 합니다
작동하는 사람이 없으면 콤퓨터는 거추장스런 물건일 뿐이죠
예수님이 우리 속에 믿음을 입력해서 무엇인가를 하시면 우리는 콤퓨터 화면처럼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인생이란 주님의 콤퓨터 화면에 전시하는 콤퓨터 스크린 같은 시스템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의지나 신념으로 만들어낸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에서 너희 믿음을 보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믿고 내가 확신하는 나의 소유인 그런 믿음을 보이라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만드신 믿음이 내 안에 들어 올때 우리의 인생 스크린에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 이 우리 삶을 통해 전시 되는 모습, 예수님이 내 속에서 행하시는 그 모습을 야고보는 믿음의 행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쉽게 표헌하면
너의 욕망과 신념이 아니라 예수님이 너희 속에서 행하시는 그 일들을 보이라는거죠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모습들처럼요
만일 우리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의 열심으로 나오는 믿음의 행위가 나의 열심으로 내가 만들어 낸 것이라면 로마서 3장의 말씀대로
그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 삶 속에서 나오는 행위가 예수님이 넣어주신 믿음의 결과물이 우리의 인생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이라면 그 행위는 나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일, 행위이기에 그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지요
이제 오늘 본문에서 한가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남았습니다
간질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설명 되어야 하겠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신 이유는
제자들을 훈련 시켜서 귀신을 쫓아 내고 산을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베터리 충전하듯 충전하여 선교하고 전도하고 사역자로 쓰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셨던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더 깊게는 (제자들은 부활 전에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이시며 창조자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작은 물고기두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게도 하시고,
물위를 걷기도 하시고,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을 내 쫓기도 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들기도 하시는 그런 기적이 아닌 표적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매직쇼를 보기 원했고 또 먹고 배부른 것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 다닌거죠
물론 제자들은 유명한 스타 스승의 제자임을 즐거워 했지요
예수님은 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향해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게서는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라고 부른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 놀이 하는 사람들과 같죠
자신이 주님의 몸된 성전, 교회임을 망각하고 모여서 종교적인 일들을 하며 바친대로 복을 받으려고 부처 앞에서 삼천번 절하듯이 종교적 행위를 드려 자신에게 필요한 복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교회 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예수님이 보시면 믿음이 없고 폐역한 세대라고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여기까지 정리해 봅시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 쫓는 일과 산을 옮기는 일을 하나로 취급하였습니다
귀신과 싸우는 일은 사탄과 싸우는 일이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산을 옮기는 일이나 사탄을 싸워 이기는 일은 사람의 능력 밖이죠
그러나 특별한 경우에는 귀신도 산도 움직여 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도록 보냈을때는 제자들이 귀신도 내어 쫓았습니다 (가롯유다 까지도 그 일을 했습니다)
만일 그때에 제자들이 믿음이 좋아서 그들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 냈다면
이번에 간질 귀신들린 아이는 왜 못 고쳤을까요?
제자들 자신도 이것이 궁금했던거죠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귀신을 내어 쫓는 그런 일들은 개인의 믿음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필요할때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넣어 주시고 예수님께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자들이 이해 쉽게 말씀드린다면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아바타처럼 사람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을 아바타처럼 성령님이 사도들 안에서 일을 하신것처럼요
밖으로 보면 사도들이 하는 일 같지 보이지만 사실은 성령님께서 사도 안에서 일을 하시는 것이기에 사도행전이 아니라 성령행전인 셈이죠
그러니까 성령 하나님을 소처럼 끌고 다니면서 자기 필요할때 언제든지 귀신을 쫓는 사람 (신성모독인거죠) 이 아니라면 귀신을 쫓는 일은 사람이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야 정상인거죠
만일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는대로 귀신을 쫓아내는 분들이 있는 것은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들은 당연히 그 능력으로 백두산도 여기저기 옮길 능력도 같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위하면 귀신을 쫓는 능력이나 산을 옮기는 능력은 같은 믿음이 원동력이 되니까요
그런데 귀신은 쫓아 내고 산은 못 옮기는 것은 정말 이해 안되는거죠
겨자씨 반쪽 믿음인가요? 아니면 삶은 겨자씨 믿음?
그런데 성경에 보면 산을 옮기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누가복음23:30입니다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세상의 마지막날에 영광으로 오시는 주님의 심판날이 두려워 산들에게 자기를 덮어 달라고 외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산을 향해 소리쳐도 산은 운직이지 않습니다
그들을 덮어주지 않고 그들을 예수님의 심판대에 세울것입니다
그러니 산은 창조이래 움직여진 적이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라고 하셨지요
답은 ‘절대 없습니다’ 죠
로마서 식으로 표현하면 이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거죠
아직 본문 중에 생각하지 않은것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 만한 아주 작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기는것은 물론 못할 것이 없답니다
“못할 것이 없다” 엄청 매력적인 말 아닙니까?
막말로, 믿음이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운수대통, 로또, 잭팟인거죠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못 할 것이 없는 요술 도깨비 방망이를 갖는거죠
그런 요술 방망이 가지고 있는 사람 보신적 있나요?
사람중에 그런것 가진 사람 없습니다
그렇다면 겨자씨만한 믿음이나 못할것이 없는 요술 망방이나 모두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것 아니죠
귀신 쫓는것, 산을 옮기는것, 모든 것을 할 수 있는것 이러한 것들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닌거죠
같은 결론이지만
믿음이란것 자체가 사람이 소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만들어 시작하고 예수님이 완성하는 예수님의 것이죠
그래서 믿음은 내가 굳게 믿는 나의 확신이나 신념이 아니라 선물이라고 하잖아요
주님이 필요하실때 우리에게 넣어 주셔서 주님이 주님의 일을 하시는것이 믿음이죠
마치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보내실때 그들에게 믿음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신것 같이 말이죠
히브리서 11장 6절에 기록된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믿음이 내가 확신하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에게 담아주신 예수님의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이죠
우리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이 넣어 주신 믿음을 보시는거죠
하나님이 나의 회개나, 나의 헌신, 혹은 신앙적인 행위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출애굽시절 유월절 밤에 문설주와 인방에 칠해진 피를 보고 천사가 그 집을 넘어 갔었죠
집 안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관계없이 칠해진 피를 보고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갔듯이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과 같은 이야기인거죠
마가복음 9:23절에 이런 말씀이 나오는것을 기억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 17장 이야기를 마가요한이 다른 각도에서 쓴 이야기입니다
귀신들려 아픈 아이의 부모가 예수님에게 할 수 있거든 병을 고쳐 보라고 했을때 예수님께서 “할수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자에게 능치 못할일이 없다”고 하신거죠
그러면 여기서 뭘 믿는다는 겁니까?
예수님이 할 수 있다는것을 믿는거죠
그래서 그 아이의 부모가 제가 믿습니다 말했죠 뭘 믿는다고요?
예수님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거죠
귀신을 쫓는것을 제자나 목사님이 할 수 있다는것을 믿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다는 것을 믿는거죠
예수님이 모든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거죠
우리의 믿음은 내가 뭘 믿는다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예수님이 할 수 있는것을 믿으니 빨리 내일 처리 주세요 하고 철야 금식하면서 예수님의 등을 떠밀면 안되죠)
하나님은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이 넣어주신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내가 굳세게 믿어서 뭔가를 해 낸다는 그런 믿음이 아니란거죠
그래서 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뭔가를 해야하고, 할 수 있다, 혹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가를 말할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일, 예수님에 대한 일, 예수님을 증거하는 내용들 뿐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일의 내용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언약에 대한 내용이죠
그래서 우리는 구언약, 신언약 즉,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르 잖아요
성경은 우리가 뭔가해서 복받는 방법이 기록된 책도 아니란 거죠
그래서 요한복음 5:39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언약을 증거)하는 것이로다”
예수님을 사랑하세요?
여기 신구약 책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만 가득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서 복받고, 구원받고, 오늘을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성경을 읽지 마시고
사랑하는 예수님에 관한 언약의 이야기를 즐겨 읽으세요
결국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언약을 이해하는 만큼 예수님을 아는 것이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아는것이 영생이라고 하는거죠
영생이 바로 천국의 삶이잖아요
예수님 사랑하지죠?
우리가 예수님께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예수님에 대해서 ‘남들이 그러더라’ 식으로 남에게서 듣는것 보다
내 스스로 성경 속에서 예수님을 배우고 알고 만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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