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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만한 믿음 #2 (기도 외에는)

  • KIMMSN
  • 2023년 7월 4일
  • 7분 분량

마가복음 9:16-29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 사건은 마태복음 17장에 기록된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다만 다른 내용이 있다면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 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기도 외에 다른것으로 이런 유 즉, 귀신이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겨자씨 만한 믿음과 기도는 동급이라는 의미 아닙니까?

우리 습관처럼 하는 식사 기도가 백두산을 제주도로 배달 시킬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의 겨자씨만한 믿음과 같다니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면 귀신도 쫓겨 나가고 산도 옮겨진다면

그동안 우리가 기도라는 것을 오해하면서 살고 있는것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도는 우리가 흔히 하는 기도와 다른 건가요?

마가복음에서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어떤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이라고 되어 있답니다

금식이란 단어가 추가 된다면 조금은 이해 될 듯합니다

금식은 기도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고 생각되니까요

기도 하나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데 금식을 하면 뭔가 될 것같다는 기분도 드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금식이라는 단어가 없으니 일단 금식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갑시다


우리는 감사의 표현으로 식사기도를 드립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하나님과의 대화인 셈이죠

그런데 귀신을 쫓는 기도는 감사의 표현 보다는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되겠지요

일반적으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산책을 나갈때 혹은 옆에 있는 편의점을 갈때에는 기도를 하고 집을 나서지 않지만

먼 여행 길을 떠날때에는 기도를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위험이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도 내가 충분히 해 낼 수 있으니까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볼때 기도는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지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너의 실력으로는 안되고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되겠지요

귀신이란 존재는 사탄에 속한 존재이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요

따라서 귀신을 쫓아 내는 일은 사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의 도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을때 기도를 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예전에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쳤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귀신들린 아이를 고칠수 있다고 생각해서 노력을 했지만 실패 해서 당황하게 된겁니다

제자들은 과거의 경험을 비춰봐서 자신들은 귀신을 쫓는 은사, 능력을 소유했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러기에 당연히 기도를 거치지 않고 아이를 고치려고 시도를 한거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외에는 할 수 없다 즉, 하나님에게 의뢰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이나 은사에 대한 한가지 오해는

믿음도 은사도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의 믿음이나 은사를 사용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주체도 예수임이시고, 은사의 주체도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소유권자는 사람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은사란 사람 안 내장 되어 있는 특별한 능력의 베터리가 충전되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그러한 신비한 베터리가 아닙니다

은사는 하나님께서 아바타처럼 사람 안에서 그 은사를 행하시는것입니다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사람이 그 은사를 소유한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에 의해 은사 받은 자가 도구처럼 사용되어지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안된다라는 뜻은

귀신을 쫓는 주체자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다면

귀신을 쫓는 주체자이신 예수님의 인감도장을 허락 받고 사용하는거죠

내가 원하는 곳에 맘대로 인감도장을 찍어데면 불법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기도할때에는 예수님이 원하는 곳에 예수님 이름이 새겨진 인감도장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을 찍어야 되죠


기도를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감도장을 잘못 사용 했거나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거죠

우리의 마음이 급하다고 기도의 형태를 바꾸어서 철야나 금식이나 특별기도라는 명목으로 하나님을 움직이려 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변경 시킬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끈질긴 기도로 하나님의 발목 잡고 늘어지면 이루어 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말하지요

그 비유의 제목 자체도 낙망치 말라는 제목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1절)”…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어떤 억울한 과부가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재판장에세 밤낮 끈질기게 요청해서 그 원한을 해결 봤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밤낮 기도로 물고 늘어지면 응답이 온다고 믿으면 오해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낙망하지 말고 기도를 물고 늘어지라는것이 아니라 기도의 정당성과 응답하시는 분이 누군지 바로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기도의 방법이 아닌 기도를 응답하시는 분과 기도 내용의 정당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도 내용이 정당성이 있는 이상 그 기도는 악한 재판관이라 할지라도 응답해 주는데 하물며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가 왜 응답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에 나오는 재판관이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질 나쁜 악한 재판관입니다

이 악한 재판관을 하나님과 대조시켜 설명합니다

마치 자기 인자하신 아버지를 옆집 사나운 똥개에 비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옆집 똥개도 자기 새끼들 잘 먹여 살리는데 하물며 우리 아버지가 자기 사랑하는 지식들을 먹여 살리지 않겠니?’ 하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예를 든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관’에 빗대어 비교한다는 것은 너무도 극단적인 예를 드신겁니다

이 극단적인 예의 결론이 그 악한 재판관도 자기가 해야하는 재판하는 일을 하는데

하물며 선하시고 거룩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그 자녀들을 위해서 악한 재판관처럼 해야할 일에 게으름 피우겠습니까? 낙망하지말고 항상 기도에 힘써라 하나님 아버지는 모두 듣고 계신다는거죠

성경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우리의 한을 풀어 주시는것에 지체하지 않으시니까 낙심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기도 내용에 하나님이 지체없이 심판의 칼을 뽑아 들어야 할만큼의 우리의 원한이 들어 있습니까?

그 원한이 땅에 속한 것인지 아니면 하늘에 속한 것인지, 세상 법정이 해결해야하는지 하늘 법정이 해결해야 하는지도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의 병이 땅에 있는 병원과 의사가 해결해야하는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해결해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생각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이 말씀을 이렇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사실 엄청난 충격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올때 까지 세상에서 믿음이 하나도 발견 되지 못할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마태복음에서의 겨자씨만한 믿음과 마가복음에서의 기도와 같은 동급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하신 말씀은 내가 다시 올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기도하는 사람을 보겠냐? 라는 말씀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악한 재판관 요구한 과부의 요구는 분명 정당한 요구였기에 악한 재판관조차 그 청을 들어 주었는데

하물며 정당한 기도에 선하신 하나님께서 응답을 지체하실리가 없다는 것이죠

우리의 기도가 과부의 요청과 같은 정당한 기도인가가 문제입니다

만일 과부가 악한 재판관에게 정당치 않은 요구를 했다면 오히려 악한 재판관의 불호령을 면치 못했을겁니다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정당치 않은 기도들을 한다면 어떤 결과를 예상 하나요?


그러면 정당한 기도가 무엇일까요?

무엇을 기도해야 하며 무엇을 기도하지 말아야 합니까?

성경은 간단하게 대답합니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같은 것들을 구하지 말라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아신다 입니다

그런 것을 구하기 위해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땅에서 필요한 뭔가를 절실히 구하기 위해 특별 산기도나 철야 기도를 하지 않나요?

제가 알기로 이방인들도 뭔가 급하고 절실한 필요에 의해 부처에게 3000번이나 절을 하며 기도하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 3000번 절을 하다보면 너무 힘들어서 생존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것들이 마음 속에서 모두 사라져 버릴것 같습니다


이방인들이하는 기도의 특징은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하지 않고 이 땅에서 필요한, 땅에 속한 것을 구하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당연히 하늘에 속한것을 구하겠지요

이방인들처럼 취직 잘되게, 학교 입학, 재산증식, 행복 같은것은 기도하지 않지요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하는 기도는 어떤 것이죠?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하늘의 것을 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이죠

기도 중에 제일 구박받고 왕따 당하는 기도이지만요


주일 대예배 시간 대표기도 시간에 장노님이 나와서 하나님도 천사도 감탄할 멋진 기도를 하지 않고 간단히 주기도문 외우고 들어가 버리면 아마 온 교회가 맨붕일껄요…

“저분 오늘 기도인지 몰랐나? 준비 못했나?” 혹은 “기도문 쓴것 잃어 버렸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예배끝나는 신호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다같이 주기도문 하심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시중에는 기도문을 가르치는 책이 많습니다

제가 본 기도문 중에 감동이 넘치는 멋진 기도문이 생각납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와는 차원이 다른 멋진 기도죠

멕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입니다


맥아더 장군 - 자녀를 위한 기도(아버지의 기도) (1952년 5월)

내게 이런 자녀를 주시옵소서

약할 때에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여유와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태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한 자녀를 내게 주시옵소서

생각해야 할 때에 고집하지 말게 하시고

주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기초임을 아는

자녀를 내게 허락 하옵소서

원하옵나니 그를 평탄하고 안이한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고난과 도전에 직면하여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관용할 줄 알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마음이 깨끗하고 그 목표가 높은 자녀를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녀를

장래를 바라봄과 동시에 지난 날을 잊지않는 자녀를 내게 주시옵소서

이런 것들을 허락하신 다음 이에 더하여

내 아들에게 유머를 알게 하시고

생을 엄숙하게 살아감과 동시에 생을 즐길 줄 알게 하옵소서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게 하시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하시사

참된 위대성은 소박함에 있음을 알게 하시고

참된 지혜는 열린 마음에 있으며

참된 힘은 온유함에 있음을 명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 아버지는 어느날

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가르쳐준 간단한 주기도문과 멕아더 장군의 기도를 비교해보면

우리 마음에 꼬옥 드는 기도가 뭐죠?

누구의 기도가 더 멋집니까?

우리 주님이 멕아더의 자녀를 위해서 엄청 바쁘시게 일을 해야 할 것같이 않습니까?

온 기독교인들이 자기 자녀를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한다면

(물론 농담이지만) 하늘은 자녀 키우는 보육원 역할만 해도 바쁠것 같습니다

누가 주인이고 누가 시증드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하늘에서 나의 자녀를 돌보고, 내가 운전 할때마다 교통정리하고, 내가 좋아 하는것 맘대로 먹을때마다 칼로리 계산해서 살안찌고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고, 나의 은행 잔고가 내려가지 않게 조절 해주고, 나의 직장 상사 잘 다둑거려 주어야 합니까?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시중드는 종, 경비원, 보호자 로 추락해 버린것 아닙니까?

맥아더 장군의 기도는 참 멋집니다

아마 예수님을 보르는 사람들도 나 자녀를 그렇게 잘 키워 줄 사람이 있다면 고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것 같습니다


멕아더 장군이 원하는 자녀처럼 키우려면 귀신을 쫓아 내거나 산을 옮기는것처럼 사람의 능력 밖의 것이기에 기도 외에는 안되는것입니까?

부모가 자녀를 아무리 잘 키워도 불가능한 인간 한계의 밖에 있는 것입니까?

제 생각에는 멕아더 장군이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자녀에게 앞에서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리 기도를 한들 원하는 자녀가 되지 않는것은 분명합니다


이 멕아더 장군의 기도는 멋진 기도이지만 기도의 정당성과 기도를 듣는 분의 주체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우리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종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주예수 (주인이신 예수님)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종이 자식을 낳고 주인에게 자기 자녀를 멕아더의 기도처럼 돌보라고 요구하면 주인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주인과 노예가 있었던 때를 생각해 보시면 멕아더의 기도가 얼마나 문제 있는 기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멕아더 장군의 기도가 억울한 과부의 목숨까지 걸고 불의한 재판장에게 메어 달려 원한을 풀어 달라는 요구처럼 들립니까?

귀신때문에 간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의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메어달리는 기도처럼 들립니까?

우리의 기도는 백두산이 옮겨져야할 정도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도이니까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 그런 기도를 하기를 원하시는걸까요?

예배 끝날 때에 사용하라고 하신겁니까?

주기도문이 우리의 삶 모든 곳, 자녀를 위하여, 뱡자를 위하여,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가장 적절히게 맞는 기도가 되는 그러한 삶,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약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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