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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그릇과 주체의식

  • KIMMSN
  • 2023년 8월 17일
  • 11분 분량

혹시 짜장면 좋아 하시나요?

저는 너무 좋아해서 짜장면을 먹기 위해 당뇨약을 한 알 더 먹으면서까지 짜장면을 먹지요

안그러면 당뇨 수치가 잭팟 터진 것처럼 올라가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짜장면을 그렇게 많이 먹었고 짜장면을 맛있게 만드는 집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짜장면을 담는 그릇에는 한번도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어요

짜장면 그릇 입장에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겠지요?


신약 성경의 로마서6:13,14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예전에는 이런 성경 구절들을 읽으면 항상 마음 속으로 “나의 몸을 죄에게 주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야지!”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 생각이 교인으로써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으로써의 옳바른 생각이라고 생각했었지요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죄에게 드리지 않고 하나님에게 드릴때 죄가 나를 주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참 모범적으로 생각했었지요?

전형적인 장로교 모태 신앙인이죠 뭐..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주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경 구절을 읽을때마다 항상 주체는 내 자신이었죠

내 몸의 주인/주체가 내 자신이기 때문에 내가 내 몸을 죄에 드리든 하나님께 드리든 나의 선택이며 나의 자유 의지라고 생각했지요

(주인과 주체를 같은 의미로 사용할께요)

그런데 로마서9장, 고후4장에서 보시면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표현하고 있잖아요

질그릇에는 내 스스로가 주체, 주인이 되는 기능이 없어요

그릇은 누군가에게 어떻게 쓰이는가로 그 그릇의 기능적 이름이 붙게 되지요

주인이 밥을 넣으면 밥 그릇, 냉면을 넣으면 냉면 그릇, 짜장면을 넣으면 짜장면 그릇, 화장실로 쓰면 오강이 되지요

어려운 표현으로는 그릇은 주체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죠

그러니 그릇이 말하기를 ‘나는 내 그릇에 제일 귀한 것을 담으면서 살아야 하겠다’ 라는 식으로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지요

주인이 될 수 없고 주체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체가 아닌 주인에게 사용 되어지기를 기다리는 질그릇이죠

주인이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 만들어 졌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질그릇의 기도는

“주여 저에게 무엇을 담으시렵니까?”라고 해야 하죠

자식을 낳으면 기쁜 마음으로 “주여 이 자녀의 삶 속에는 무엇을 담으시려고 태어 나게 하셨나요?”해야 하죠

그런데 교회는 우리를 주체가 있는 사람으로 교육시키는 바람에 교인들은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구해서 자신의 그릇에 담으려고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기도 내용의 공동점이 “주세요” 잖아요

머리가 되게 하시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해 달라고도 하지요

머리가 되어서 남들을 부리면서 살겠다는거 아닌가요?

머리가 되든 꼬리가 되는 주인의 소관 아닌가요?

그뿐입니까?

자식마져 의사, 변호사, 기업가 등등 돈을 잘 벌고 안정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잖아요

하나님이 그 기도를 안들어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만일 그 기도 다 들어 주시면 병원에 환자는 하나도 없고 모두 의사만 바글바글 할텐데요

사람들은 자신이 그릇임을 새까맣게 잊어 버린거죠

자신의 그릇에 주님께서 무엇을 담아 놓고 계신지는 전혀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요


신약 성경 로미서 16:31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요

이 말씀은 천국 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지요

누가 주체자인가를 이야기를 하는거죠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교육을 받았나요?

내가 주체자가 되어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교회에서 시키는 일 잘하면서 예수를 잘 믿으면 나 뿐 아니라 내 가족까지 천국 간다고 배웠잖아요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주인은 그를 믿는 종과 종의 가정을 책임 지신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주체자가 당연히 ‘나’잖아요

내가 예수를 잘 믿으면 그 댓가, 상급으로 나와 내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배웠죠

그래서 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팻말을 들고 전도도 하잖아요

이 팻말이 무엇을 뜻하죠?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입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성경을 크게 오해하는 거죠

그렇게 믿으면 구원은 은혜가 아니라 내가 믿는가 안 믿는가의 율법의 행위에 따라 구원이 결정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부인하는 거죠

로마서 3: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와 정면으로 충돌하잖아요

내가 무엇을 믿는다는 것도 율법의 행위 잖아요 마음의 행위니까요

사람을 죽이는것만 살인이 아니라 마음으로 미워하는것도 살인 행위잖아요 마음의 행위니까요


“주 예수를 믿는다”는 뜻은

예수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것이죠

더 쉽게 표현하면

나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에 나의 삶과 나의 가정에 대해서 나는 아무 권리가 없다는 고백이지요

신체 포기 각서 같은거 알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대한 포기 각서라니까요

나와 내 가정이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도 주인님이 알아서 해 주세요라는 포기 고백인 거죠

이것이 주님은 식당 주인이시고 나는 아무 권리가 없는 그가 사용하시기를 기다리는 그릇이라는 관계를 인정하는 거죠

“내 그릇에 짜장면을 넣으시든 짬뽕을 넣으시든 맘대로 하세요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이야기죠

그런데 자신이 주인이라는 주체 의식이 강한 사람은 기도하면서 “쭈~시옵소서~~” 라고 기도 하죠

기도 응답 받아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거죠

자신이 질그릇이란 생각을 전혀 못하는 거죠

내가 주인이고 예수님은 나의 기도나 들어 주는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착각하는 사람이죠

주님을 나의 주인이고 주체자라고 생각하시는 사람은 기도로 뭔가를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주님의 것이고 주님이 나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시니까요

더군다나 자신은 자신과 자신의 가정까지 포기 각서를 쓴 사람이니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그릇에 뭘 넣으실지 이미 계획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태어난거라구요

물론 피임에 실패해서 태어 났다고 말하겠지만 그것 조차도 하나님의 계획을 피할 수 없어요


기독교를 아주 많이 오해하는 사람들 중에는

기도하면서 자식의 그릇에도 이것 넣어 달라 저것 넣어달라 주문하는 사람이 있지요

이런 사람은 마치

자신이 짜장면 그릇인걸 잊어 버리고 짜장면 먹으로 온 손님으로 착각해서 주인인 예수님께 이거 달라 저거 달라고 주문하는 사람이지요

우리는 이런식으로 잘못된 주체의식으로 세뇌 되어 있어서 그 함정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기가 매우 힘들어요

그 이유는 세상의 학문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세상 학문을 교회가 그대로 받아드려서 적극적인 사고방식, 자기개발, 잠재력 개발, 기도 응답 받는 방법 등이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우리를 세뇌 했잖아요

주님이 나의 왕이시고, 주인이시며, 주체자이심을 인정하고 믿으시면 성경읽는 방법이 완전히 달라져요

남들이 가르치는 성경 공부에 의지 하지 않아도 되요

예수님이 성경의 주인공이시고 예수님이 주체자라는 것만 알면 일반 사람들도 성경 해석이 잘못 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성경 공부나 설교의 목적이 뭐죠?

성경에서 예수님 찾기인 거죠

성경에서 예수님 찾지 않고 딴 것 찾으면 ‘꽝’이지요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사람이나 이단들의 공통점이 모두 예수님이 주체가이시고 주인이심을 믿지 않고 내 자신이 뭔가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또 남들에게 그렇게 뭔가를 하라고 시키는 거예요

성경에서 예수님이 주체자인걸 모르면 신학자도 목사도 이스라엘의 성경 전문가들도 모두 성경을 오해 하게 되요

예를 들어 볼께요

내가 주체자가 되고 주인이 되어 천국 갈려고 계획한다면

뭘 해야하지요?

당연히 내가 예수를 믿으려 하겠지요

그러면 내가 예수를 믿으면 내가 무엇을 해야 되지요?

교회를 얼마나 자주 가야 되며, 헌금을 얼마나 해야 되며, 기도를 얼마나 하고 구제를 얼마나 해야 되는지 계산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스스로 율법의 행위를 하려고

이 교회 저 교회가 시키는 모든 것을 다 해야 된다고 생각 하잖아요

이런것 모두가 하나님 앞에 크레딧을 전혀 얻지 못하는 율법의 행위인거예요

그러나 주님을 내 삶의 주인, 주체자로 삼으시면 나는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요

주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니까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이끌고 가실 거니까요


짜장면 집에 손님이 많이 들이 닥치면 짜장면 집 그릇들이 뭘 해야하죠?

그릇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요리 할까요?

그릇들이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릇에게 무책임하다고 욕하면 안되요

우리는 사용 되어지기를 기다리는 질그릇이니까요

주님이 사용하지 않으시면 그냥 푸욱 쉬시면 되요

마치 짜장면 집 부엌 찬장에서 가만히 쉬고 있는 짜장면 그릇처럼요

언제까지요?

짜장면집 주인이 그릇을 꺼내서 뭔가를 담기 시작 하실때까지요

주님이 예뻐하시는 귀한 그릇일수록 예쁘게 진열되어 있고 많이 사용하지 않아요

식당의 주인을 믿지 못하는 그릇들을 보면 가관이지요

그릇들이 찬장에서 기어 나와서 밤새 그릇들이 스스로 자기 원하는 것을 만들어서 자신의 그릇에 채우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새도록 분주하지요

밤새 만든 자신이 원하는 요리를 담고 찬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데

가게를 오픈하자 짜장면 집에 손님이 와서 짜장면을 시켰지요

주인은 주인의 솜씨대로 맛있는 짜장면을 만들어서 그릇에 담으려고 하니 그릇 안에는 이미 밤새 그릇들이 스스로 만든 요리가 잔뜩 들어 있는 거예요

짜장면집 주인은 그 요리를 어떻게 할까요?

쓰래기 통에 던져 버리고 자신이 만든 짜장면을 담아서 손님에게 갖다 주지요


로마서에서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는 그릇으로 주인이 원하는 것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릇에 주인이 담지 않은 것은 모두가 쓰래기 통으로 직행하는 거죠

현제 나의 그릇에 주님의 것이 담겼나요 내가 원하는것이 담겼나요?

아니면 부모가 원하는것을 담고 사시나요?

무엇이 담겨있는지 보여 주세요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을 보이라고 하지요

내가 담은것 말고 주인이 담은 그 믿음을 보이시라니까요

그래서 믿음을 선물이라고 하잖아요

내가 믿었으면 내 마음의 노력이고 행위지 선물이 아니지요

또 성경에 이런 말씀이 나오잖아요

“주여 내가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고, 방언도 하고..(목사, 선교사, 장로, 권사, 집사 노릇도 하고) 등등”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죠?

“이 불법을 행하는자야!”라고 하시잖아요

왜죠?

예수님이 만든 짜장면이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는 예수님이 주인이심을 믿으며 주님이 우리 인생에 무엇인가를 담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예수님이 필요하실때 알아서 다 그릇을 내어 쓰십니다

어떤 그릇에는 짜장면을 담으시고

다른 그릇에는 의사나 변호사를 담으시고

어떤 사람은 가난함을 담고 또 어떤 그릇에는 부자를 담으십니다

주님께 이것 담아 주세요, 내 자식에게는 저것 담아 주세요 등등 그런 주문하지 마세요

질그릇은 주인에게 주문 할 수가 없어요

여기까지 말씀 드리면 이렇게 답하시겠지요

성경에 구하라고 하셨는데 왜 못 구하냐구요..

네, 맞아요, 구하세요, 뭘 구하시냐하면

내가 원하시는 것을 구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구하시면 그러면 분명히 받을 것이며 두드려도 열립니다

어차피 주님이 담으려고 했던 거니까요

지금 있는 우리의 현 상황이 주님이 담으신 거예요

나의 실수로 와 있는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주인이었음을 인정하는거 잖아요)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주님이시거든요

물론 마음에 들지 않겠지요

여기 이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찾지 못하면 다른 상황이 와도 주님의 뜻은 못 찾습니다

그러나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 달라고 기도를 하지요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고 착각하니까요

주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시고

그 주인님이 우리를 여기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거예요

나는 내 실수로 와 있는것 같아도 말입니다

우리는 그릇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 맘에 안드는 이 현실을 주님이 담아 놓으신 거예요

왜요? 그야 모르지요

주님에게 짜장면 담아 달라, 떡볶기 담아 달라 주문하지 마세요

누가 주체자이고 주인인지 확인하시고

그리고 우리는 단지 주님이 사용하시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임을 바로 인식 하셔야 해요


신앙이란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가고,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 하는 율법의 행위를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주인이며 누가 왕인가를 깨닫고 인정하는 것예요

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들때는 뭔가를 담기 위해서 만들지요 생각없이 목적 없이 만들지 않으시거든요

토기장이가 무엇을 위해 ‘나’라는 질그릇을 만들었는가를 찾는 것이 우리의 인생 목표인 거죠

질그릇끼리 행복하게 살라고 질그릇을 만들진 않았지요

질그릇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주인의 찬장에 진열된 그릇이란것 자체가 행복이예요

질그릇이 자신을 주인, 주체자라고 오해한 사람들이 바리세인들이예요

성경의 율법을 자신이 지켜서 복을 받으려는 마음이 바리세인들의 마음이죠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마귀 자식이라는 욕을 먹었잖아요

율법의 말씀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마음을 갖는 자체가 자신이 주인이며 주체자라는 착각을 하는거예요

예를 들어 봅시다

주인이 짜장면, 짬뽕, 탕수육등을 만들어 놓고 그릇들에게 너희는 오늘은 너희 그릇에 짜장면을 담고 내일은 짬뽕을 담고 그 다음 날에는 탕수육을 담아라 하고 율법처럼 명령한다면

그릇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예!’ 라고 답하고 명령대로 순종하면서 음식을 자기 그릇에 담는 사람들이 바리세인들이죠

그런데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요?

주님! 우리는 못해요! 라고 대답해야 해요

왠지 아세요?

우리는 주체가 아닌 그릇이기 때문에 율법의 명령을 실행 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것을 깨달으라고 율법을 주신 이유잖아요

주님이 우리 그릇에 담아 주셔야지 그릇인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담을 수가 있어요? 하고 대답해야 잖아요

그릇은 스스로 담을 손이 없고 발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고백할때 그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가 못 담을 줄 알고 내가 너희에게 다 담는다 걱정마라” 라고…

이것이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스스로 뭔가를 담을 수 없는 그릇임을 깨닫는 거죠

우리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못지키는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면서 율법을 다 성취 하셨잖아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신을 깨닫게 하기위해 율법을 주신거예요

순종했고 지켰다고 말하면 바리세인되요

마귀 자식된다니까요

물론 지키려고 노력해야 안되는 것을 알겠죠

그렇기 때문에 안되는걸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구약 성경에서는 말씀을 지키고 순종 하라는 거예요

그릇이 스스로 짜장면을 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게 그렇기 힘든가요?

바리세인들은 뭐든 다 할 수 있데요

십계명을 읽으면 바리세인은 자신들이 주체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 하나 몽땅 지켜 버린다니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질그릇이라고 생각 안하니까요

그러나 그룻인 우리는 십계명을 하나도 못지키는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께 두 손들고 항복하고 의뢰하죠

십계명 뿐아니라 성경의 모든 율법적인 명령이 우리가 주체자인지 아닌지를 분별하여 죄를 깨닫게 하기위해 주신거니까요

간단히 말하면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깨달으라고 주신 거죠

(로마서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다른 예를들어 봅시다

너희는 땅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시면

자신이 주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대답은

“네! 제가 땅 끝까지 가서 증인이 되겠습니다!”하고 직장과 가정 뒤로하고 땅 끝까지 가 잖아요

땅 끝이 어디죠?…땅 끝은 없어요

이것은 주체를 혼돈하기 때문에 헷갈리시는 거예요

주님이 땅 끝까지 가라고 명령하신 대상은

어디를 스스로 갈 수 없는 질그릇에게 하신 말씀이잖아요

우리가 질그릇이니까요

그 명령에 순종해서 땅 끝까지 갈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질그릇이 아니란 증거죠

질그릇은 아무데도 갈 수 없어요

그래서 성령님이 질그릇을 가지고 가시죠

땅 끝까지 말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로 땅끝인 여기까지 온 거예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를 데리고 오신 거죠

그래서 우리가 여기까지 이사 오고, 이민 와서, 지구 반대편인 여기, 땅 끝까지 파견되어 와서 살고 있잖아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가 여기 이 땅 끝의 현실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주님이 나를 보내시는 곳은 어디든지 땅끝이예요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해서 나왔죠

문제는 이스라엘이 가는 곳 모두, 발이 닿는 모든 곳이 다 애굽이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원리죠

심지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곳도 애굽이 되잖아요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계시록 11:8)

한국에서 태어 나서 미국으로, 일본으로, 태국으로, 심지어는 러시아나 아프리카까지 이민 보내시 잖아요….

온 세상 땅끝까지 보내신것 맞죠?

주체자이신 주님이 질그룻인 우리를 여기까지 보내신 거예요

주님이 인도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한발짝도 어디 못가요

땅 끝까지 와 있는 우리는 우리가 처한 이 환경에서 십자가의 증인의 삶을 살면 되는 거예요

여기를 마다하고 또 딴데 갈 필요가 없어요

성령님을 자신의 율법적 행위를 위해 이리 저리 끌고 가시면 안되죠

만일 주님께서 필요하시면

우리를 땅 끝 어느 원주민을 첫 눈에 반하게 만드셔서 그 사람과 결혼해서 그 곳으로 가게 하실꺼예요

아니면 좋은 사업 아니디어가 있어서 그 곳으로 가든지

계획치도 않은 일에 휘말려서라도 주님은 우리를 보내시죠

안 보내시면 그냥 그 자리에거 열심히 살고 있으면 되요

괜히 몇 주 동안 단기로 갔다 오실 필요 없다니까요

그 곳 가는 비행기표와 비용을 그곳에 계신 선교사 분들에게 보내 주세요 그러면 그곳 선교사가 더 일을 잘 하실 수 있어요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은 질그릇이 해야할 생각 아니예요


시편 19편을 보시면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라고 말씀하세요

내가 없어도 주님이 하신다니까요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말씀이 세계끝까지 이른다고 하신 말씀에 우리가 지금 동참 되어져서 여기에 살고 있는 거예요

땅 끝에 와서 살고 있는 거라구요

필요하시면 또 어디론가 보내시니까 걱정 마세요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주님이 계획 하셔서 이곳까지 온 거니까요

성령님은 우리를 땅 끝인 이 곳, 우리의 삶 속에까지 같이 오셔서 우리를 십자가의 증인으로 만들어 내시고 계시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사도행전을 보시면 성령님이 땅 끝까지 가시는데 사도들을 도구로 사용하시면서 가시잖아요

사도들은 자신 속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하시는 일에 증인이 되고 있는 거지요

마치 우리가 멀리 이사 오고 이민 와서 주님이 하시는 일에 증인으로 살고 있는 것처렴요

성경은 질그릇인 우리에게 뭔가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체자로 일을 하십니다

그것을 기록하고 증거하는 책이 성경책이죠


그럼 이제 처음에 생각했던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의 몸을 죄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고 의의 병기로 사용하라고 하시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예전에는 제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원하는대로 내 몸을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지”라고 했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질그릇의 착각이었던 거죠

주체가 아닌 주님의 도구로써의 질그릇이라면 이 성경 구절을 이렇게 이해해야 되요

‘나’라는 질그릇은 전에는 사탄에 의해서 사탄이 자기 맘대로 죄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 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주인이 되셔서 나의 몸을 의의 그릇으로 쓰시겠구나.. 라고요

더 이상 사탄이 내 그릇에 죄를 담아 주인 노릇 못하게 하도록 주체이신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그렇게 만드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주체자로 인정하고 믿는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주 예수”(예수님이 주인이심)를 믿는 사람이 된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율법의 행위를 하려고 하지 마세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인해서 우리는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강박 관념이예요

우리는 이 강박관념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의 종 노릇하는 저주 아래 있지 않아요

공짜로 주시는 주님의 은혜 아래 살아요

율법에서 자유함이 없는 사람들의 특색이 뭔지 아세요?

두려움입니다

혹시나 내가 이런 저런 일을 잘 하지 못하면 천국을 가지 못하는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요

그래서 율법을 되도록이면 잘 지켜 보려고 노력하죠

성경의 윤리 도덕적으로 깨끗히 살아 보려고 하고요

그러나 탕자를 보세요

아버지 재산을 모두 창기와 날려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기다리시 잖아요

재산을 창기와 날려 버렸다고 아버지가 아들을 호적에서 삭제해 버리지 않는다구요

창세전에 예수님 안에서 아들로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아요

구원에서 제외 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처음에 읽었던 로마서 6:14절을 다시 보세요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 아래 있는자는 성경을 다 외우시든지 아니면 항상 성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읽으시면서 자신이 율법을 범하는지 점검해야 해요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요구하는 율법의 행위를 쉬지 않고 항상 행해야 해요

왜냐하면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도 자신이 알아서 해결해야 되니까요

돈버는 것, 직장, 자녀, 건강, 행복 이런건 중요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율법을 어기면 대낮에 벼락 맞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이며 영원한 심판이기 때문이죠

심판의 대상이 나의 행동만 아니지요

말과 마음의 생각까지 율법을 어긴 것 까지 모두가 처벌 대상이죠

만일 율법 아래 있으면서 율법에 무관심하다면 모든것 다 포기하고 살면 되요 어차피 모든 성경의 저주가 다 쏱아져 내릴테니까요

율법에 의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본인 뿐 아니라 처자식과 사촌의 팔촌 그리고 키우던 소, 닭, 개나 고양이, 새까지 저주를 받게 되니까요

그러나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살아요

성경의 그 많은 율법 조항들이 우리의 목을 조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에수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값을 이미 다 치루어 주셨으니까요

내가 태어날때부터 죽을때까지 내 삶 속에서 발생되는 모든 죄 값을 다 해결하여 주신 거예요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해서 죄를 지을 생각을 안하죠

우리는 은혜에 감사해서 죄를 안 짓고

그들은 저주와 심판이 두려워서 죄를 안 짓고

똑같지요 그러나 다른 점도 있어요

우리는 실수로 본의가 아니게 행동이나 마음 속으로 죄를 지어도 이미 용서를 받았지요

그러나 율법 아래에서 율법을 지켜야하는 사람들은 본의가 아니게 실수로 지은 마음의 죄까지도 모두 저주와 심판을 받지요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아마도 그들은 모르실꺼예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가 지은 죄의 책임까지 다 해결하셨어요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 죄책감에 시달려서 정신 치료까지 받잖아요

그걸 의사나 삼담사가 치료하지 못해요

부러진 뼈에 침 발라 주는 정도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가 그 죄의 책임까지 지워주지 않으면 치료가 되지 않지요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시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잖아요

주님은 우리의 삶 전체의 마스터 마인드(Master Mind)가 되시죠

모든걸 주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니까요

우리는 단지 주님이 하시는 일의 증인이 되는 거죠

우리가 할 일은 목격자, 증인이 되는 거죠

예수님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잖아요

우리가 태어난 목적이 주님의 복음의 증인이 되려고 태어 났거든요

우리가 지금 사는 장소가 주님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데려다 놓으신 곳이예요 증인 하라고요

이 곳을 예쁘게하고 이 곳에서 주님과 함께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면서 우리의 주인이 주님이라는 전시하면서 살면 성경에 나오는 영웅들의 삶과 똑같은 거예요

그들은 목숨 걸고 이리 저리 다니며 증인으로 순교했지만

우리는 안정된 삶을 살면서 주님의 하시는 일의 목격자로 살고 있는 거죠


어떤 사람은 십계명을 읽으면 마음이 쪼그라 든데요

우리는 허허 웃지요

십계명이란 율법 아래 있지 않으니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잖아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그릇에 넣고 싶은 것들이 있지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가득 넣고 싶어 하세요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의 욕망이 가득찬 우리의 그릇을 비워야 해요

물론 자식의 그릇에 채우고 싶었던 욕망도 말이죠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만 꽉차게 넣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구하라 주실 것이요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시잖아요

우리가 구할것은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뿐입니다

저는 철야 기도하는 사람들과 산기도가서 금식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무서워요

그렇게 밤새 부르짖으니 그 사람의 삶속에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얼마나 충만하겠어요?

자녀들의 삶 속에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가 가득하도록 기도하는 부모님은 부러움을 넘어 존경과 두려움으로 느껴져요

주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기에 밤새워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지 참 부럽기도 하고 무서워요

저도 그들처럼 주님에 대해서 더 알고 싶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거나 멋진 배경이 없어요 허지만 짜장면 그릇만 생각하면 위로가 되요

짜장면 그릇인데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잖아요

주님이 짜장면을 담으시든 짬뽕을 담으시든 주님 뜻대로 담으시겠지요

기다릴 때까지 기다리고 갈 때까지 가 보면 주님이 복음을 위해서 그릇에 뭔가 담으시겠죠

그러면 저는 주님이 나의 그릇에 담으신 복음의 증인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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